서거 전날, 개인적으로 충격적이고 힘든일이 생기기도 했고 여러가지가 겹쳐서 참 힘든 5/6월을 보낸것이 사실인데 그 동안의 고민속에서 얻은 결론은, '현재의 나로서는 안된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였다.
인격적인 변화와 동시에 지성적인 부분에서도 고질적인 문제인 '지식 편식'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성적인 변화에 대해서 잠깐 얘기하자면, 사실 이 변화는 최근에 들어서야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 아니라 아마 적어도 1년 전부터 실천하고 있던 부분이다. 쳐다보지도 않던 경제관련 입문서며, 각종 교양서적들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얕으나마 이런 지식이라도 가지고 있는 편이 분명 훗날 내가 밥 벌어먹고 사는데 도움이 될거라 굳게 믿고 있다.
그렇지만 '정치', '사회'라는 주제는 여전히 관심 밖에 있었고, 유일한 정치적 관심의 표현은 정치인에 대한 근거도 이유도 없는 비난과 혐오를 거칠게 드러내는것 뿐이었다. 어쩌면 이런 비난과 혐오조차도 관심에서 비롯된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부터 대학시절 선배 세대까지 보고 듣고 했던 정치인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들은 모두 그런것뿐이기에 자연스레 학습된 조건 반사였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는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하는 편이 맞는 말이겠다.
어쨌든, 커다란 역사적 비극을 경험한 나는 대한민국에서 무식한 정치맹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섭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어쩌면 매우 오만한 표현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 혹은 기득권이든 뭐든 그런 따위들이 내게 선전포고 (또는 협박)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투 준비를 위해서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이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던 중에 처음으로 선택한 '정치적인 색깔'을 띄는 책이 바로 유시민님이 쓰신 '후불제 민주주의' 이다.
'후불제 민주주의' 라는 단어는 이미 오래전에 유시민님께서 어딘가 공식석상에서 처음 소개하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언제쯤이었는지 무슨 방송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첫 감상은 '저 사람은 표현력이 일품이네.' 였다.
우리는 힘들게 민주주의를 이룩했다고 하지만, 실은 거의 공짜로 얻은 것이나 다름없고 아직 치르지 못한 민주주의 할부금을 앞으로도 계속 치러야 할것이라는 지적이었는데, 이 책은 제목과 '후불제 민주주의'를 말씀하셨던 그날 말씀의 연장선 상에 있지는 않다.
이 책은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데, 말 그대로 '대한민국 헌법에는 이런이런 것들이 있다' 라고 소개하는 책이다. 음...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표면적인것이지만 무지한 나에게는 그것 나름대로 얻게 되는 새로운 지식도 많았다.
또한, 이 책에는 현 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유쾌하면서 나중에는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많이 쓰여져 있는데, 어떤 독자의 서평을 보면 별 4개를 주면서 비판은 쉽지만 대안 제시는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유시민님은 이 책에서 대안을 몇번이고 제시하고 있다.
"결국 권력의 도덕과 능력은 장기적으로 대중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 p168
정말로 가슴을 후벼파는 문장이다.
나는 대한민국에 태어나면서부터 민주주의 라는 빚을 지고 태어났고, 언제까지인지도 모르지만 계속 그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 떳떳하게 살기 위해서. 속편하게 도망치고 평생을 도망자로 사느니 당당하게 빚을 갚으면서 살아갈테다.
적어도 내 주변의 지인들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우리의 민주주의 숙련도는 이제 갓 75 이고 수습 민주주의에서 숙련 민주주의로 가기 위해 스스로의 수준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쪼렙 아이템이라고 무시하지 말자. 만렙 달고 리넨 구하러, 구리 광석 캐러 뛰어다녀보지 않은 만렙만 나에게 돌을 던지시라.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책. 민주주의의 대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시작으로 삼기에 더 없이 훌륭한 책이라고 감히 평한다.
Posted by 스카리